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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명의 뒤안길에는 디킨스의 이탈리아 여정은 영국에서 출발해 프랑스 리옹-아비뇽-마르세유를 거쳐 제노바에서 시작한다. 이어 볼로냐-베네치아-베로나-밀라노-피사-시에나-로마-나폴리-폼페이를 거쳐 피렌체에서 끝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탈리아의 역사나 정치`행정`예술`종교 등에 대한 언급을 피하겠다고 했다. 그림과 조각, 건축물에 대해 쓰인 파묻힐 만큼 많은 연구보고서를 대신해 이탈리아 주변 풍경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과거의 영광을 잃고 쓰러져가는 건축물을 보며 참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옛 영광이 지나간 자리에는 허무만 남았다. 그중에서도 가난과 무질서는 그에게 큰 충격을 준다.
"질서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어떤 집의 지붕 위에 또 다른 집을 지은 지저분한 주택들.(중략) 가도가도 끝없이 올라가는 길들, 하수구 주변에서 얼음물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열이 날 듯 어지럽다."
저자가 전한 제노바의 첫인상은 금방 바뀐다. 여행을 끝낼 때쯤 그는 이곳의 돌멩이마저도 애착이 가고, 행복과 평온의 시간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반쯤은 벗은 아이들과 지저분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고,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지독하게 불결한 미로로 이어지는,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과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밀집한 대로에서 벗어난 가파른 샛길. 생기가 넘치면서도 죽어 있고, 떠들썩하면서도 조용하고, 요란하면서도 수줍게 움츠러들고, 잠에서 깨어난 듯하면서도 깊은 잠에 빠진 이곳은 이방인에게 계속 걸으며 보고 싶게 만드는 일종의 도취 같은 것이다."
그의 문명(文名)을 떨치게 한 '골동품 상점'이나 '크리스마스 캐럴' 등에서 보여줬듯 체험으로 알게 된 밑바닥 생활상과 애환에는 위트를 섞었다. 골목으로 들어간 그의 눈에 가장 자주 띈 것은 부랑자와 거지였는데, 아무 데서나 방문객을 불러 세우고 에워싸면서 낡고 쇠퇴한 도시의 이미지를 심화시키는 거지를 표현하는 데도 재치와 유머가 살아있다.
"피사가 탑으로 세계에서 일곱 번째 불가사의가 됐다면, 거지로는 적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불가사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중략)거지들은 피사의 모든 무역과 산업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디킨스는 곳곳에서 종교 다툼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고, 어린 아이들의 묘지를 보며 쓸쓸히 고개 돌린다. 여행지의 겉모습보다 이면에 깃든 고통을 어루만지는 모습에서 대문호의 면모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생생한 묘사
웅장하고 눈부신 곳과 쇠락해 황량한 곳이 뒤섞인 곳에서 이 여행자는 기쁨과 슬픔, 안정과 혼란을 동시에 느낀다. 새로운 것을 마주한 현장에서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를 집에 부쳤고 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공상적이고 나른한 느낌은 낯선 곳에 흠뻑 빠진 소설가의 맛깔스런 묘사와 통찰로 독자를 자극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는 베네치아 여행기가 그렇다.
디킨스는 스스로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을 물에 비친 그림자에 비유한다. 직접 보고 듣고 겪고 쓴 에세이임에도 그림자일 수밖에 없는 건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탓인지 여행을 소개하면서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어디에서도 물을 거칠게 휘저어 그림자를 망치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한 그의 말이 대번에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섬세한 표현과 극적인 서술 탓에 아비뇽에서 만난 도깨비 노파. 살인을 한 어느 청년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장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여관과 저택, 뒷골목의 스산한 분위기, 길거리 사람들의 표정은 함께 도시를 누비는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예컨대 콜로세움에 대한 그의 묘사는 피와 흙먼지가 자욱한 경기장에 그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이끼로 뒤덮인 벽과 아치들, 햇살이 드는 복도, 현관에서 자라는 잡초'와 더불어 조금씩 무너져가는 콜로세움은 그의 마음을 크게 흔든다. 위풍당당한 모습 대신 폐허의 들판이 된 고대 로마를 접한 뒤, 그가 느낀 씁쓸함은 '영원의 도시' 로마의 기억을 새롭게 쓰게 한다.
170년도 더 된 리뷰이기에 책에 등장하는 도시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책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여행 리뷰지만 '시내로 이동하는 법' '미술관에서 봐야 할 작품' 또는 '패키지 여행사 고르는 법' 등과 같은 팁은 없다. 요즘 블로그에서 보이는 여행 리뷰보다 자세하거나, 전문적이지도 않은 이 책이 여행 에세이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소설 같은 묘사와 더불어 대문호의 날카로운 통찰과 철학적 고찰이 담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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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27 11: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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