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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동원하여 올여름 최고 흥행작이 된 ‘부산행’과 나란히 놓인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원래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한 감독으로, 리얼리즘 사회 비판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역의 실험을 꾸준히 이어오다가 ‘부산행’을 통해 실사영화로 선회했고, 그의 어둡고 무지막지하고 날카로운 세계관은 좀비 장르를 만나 상업영화계에서 대폭발했다.
좀비 스릴러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의 이전 이야기인 프리퀄로 소개되고 있다. 두 영화의 소재는 같지만 이야기나 캐릭터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서울역’은 ‘부산행’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의 이야기를 담는다. 적당한 웃음과 눈물 코드가 있고, 어쨌든 결말을 희망으로 마무리한 ‘부산행’에 비해,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감각으로 대한민국 지옥도를 묘사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걷어버린 채 어른들이 보라고 만든 ‘서울역’은 신랄하고, 비관적이고, 어둡고, 잔혹하다.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은 작화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최소한의 선으로 배경과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림체는 단순하고 거칠지만 그의 스토리텔링은 깊고 풍부하다. 잔인한 세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분노와 폭력이 서사 구조 안에 유려하게 녹아든다. 따라서 그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재미나 미학적 즐거움을 발견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섬뜩한 시선을 느끼고, 마초적 가부장제 구조가 얼마나 사회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게끔 한다.
‘부산행’에서 좀비 감염은 심은경이 KTX에 올라타면서부터 시작되고, 곧 심은경은 좀비가 되어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좀비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서울역’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은 19세 가출 소녀 심은경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서울역에 정체가 불분명한 부상자 노인이 나타난다. 좀비가 되어 다시 살아난 그는 삽시간에 서울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한편 가출한 딸 혜선(심은경)을 찾아 나선 아빠(류승룡)는 그녀의 남자친구 기웅(이준)을 만나러 왔다가 좀비의 습격을 당한다. 서로를 찾으려는 세 사람의 분투 속에서 좀비로 뒤덮인 서울역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삽시간에 이상 바이러스가 퍼지고 서울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계엄령이 선포된다.
바이러스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영화에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어떤 질병이나 재난의 원인을 명확하게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서로 물고 잡아 뜯어 모두가 똑같은 괴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이기적이 되어가고, 세상은 더욱 지옥이 되어가는 바로 지금 현실을 직시한다. ‘부산역’에서도 경험했듯이 일단 나부터 살고 보기 위해 더더욱 잔인해지는 인간이 좀비보다 더 무섭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근대화와 도시 개발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서울역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무게를 싣는다. 정부 주도로 개발이 진행된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노숙자가 되어 서울역에서 살아간다. 늘 우리 주위에 있지만 애써 관심을 두지 않는 타자인 이들은 당연히 저마다 사연이 있다. 아직 10대 소녀, 소년인 혜선과 기웅은 서울역 근처의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원조교제에 달려든다. 어쩔 수 없다기보다는 애써 살아보려 노력하는 것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혜선을 찾아 나선 아빠의 진짜 정체가 영화 중간에 드러나며, 영화는 잔인한 마초 가부장의 민얼굴과 그를 중심으로 증식하는 자본의 본질을 보고자 한다. 서울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재개발지 용산의 아픔을 아는 우리로서는 용산 근교에 재빨리 퍼지는 좀비 바이러스와 아수라장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역시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기 위해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정부는 사회 불순분자로 몰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정의로운 시민들의 연대가 무력해질 지경까지 악의 세력이 창궐하는 가운데 우리는 아비규환의 도시를 체험한다. 그리고 실제로 좀비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지막지한 좀비처럼 무한 증식하며 민초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자본의 탐욕이 진정 재앙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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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8-19 1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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