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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때론 누군가에게 신념이다. 무대 위에서 신성한 노동을 하듯 정성껏 연기하는 양준모(35)가 굵은 음성으로 온갖 힘을 다해 <장발장>에 대해 말할 때, 여인과 소녀 사이를 오가는 전나영(26)이 <판틴>의 캐릭터를 설명하다가 시리아 난민 이야기 도중 눈가가 촉촉해질 때 그걸 느꼈다.
2년 전 27년 만에 한국어 라이선스로 처음 선보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오는 2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레미제라블>은 1985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후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힌다.
양준모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옥살이를 한 뒤 은촛대를 훔친 자신을 용서해준 주교로 인해 삶이 바뀐 장발장이다. 전나영은 장발장이 자신도 모르게 외면해 위험에 빠뜨린 판틴을 연기한다. 연약해 보이나 자신의 딸이자 훗날 장발장의 수양딸로 들어가는 코제트를 위해서는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한다.

- 2007년 <레미제라블> 공연의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공연이 무산돼 아쉬움이 컸겠다.
양준모 : 굉장히 아쉬웠다.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일본 도호 프로덕션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으로 열연하며 아쉬움을 달래다 마침내 한국 무대에 오르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 든 역도 많이 하고, 강한 캐릭터도 많이 했는데 12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한 것이 장발장 역에 대한 준비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다.

- 네덜란드 교포 3세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전나영 : 할아버지가 네덜란드 한국 대사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게 되면서 현지에 정착했다. 엄격한 부모님으로 인해 어릴 때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친척 집을 오가면서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 문화에 점점 익숙해졌다. 2010년 홀로 한국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영국 <레미제라블>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판틴 역을 맡았다고 들었다.
전나영 : 한국에서 공연할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역을 위해 당시 영국에서 치러진 오디션에서 한국어로 노래했는데 뽑히지 못했다. 이후 영국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을 연기하려고 오디션을 치렀는데 마지막 오디션에서 뮤지컬 프로듀서인 캐머런 매킨토시가 판틴의 그 유명한 넘버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을 불러보라고 제안하면서 이 역을 따냈다. 당시 연출자는 세 명이었는데, 한국 <레미제라블> 초연의 연출자 로런스 코너가 그중 한 명이었다. 그 인연으로 올해 한국 재공연 판틴으로 설 수 있게 됐다.

- <레미제라블>에 출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양준모 : 삶의 전반이 바뀌는 것이다. 장발장의 인생은 주교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주교를 만난 뒤 많은 일을 행하는데 그것들을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아니나 일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일들처럼 연기하는 것이 목표다.

전나영 : 전반적인 내 삶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극 중 인물들은 각자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인데 다들 자신의 것을 지키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연기하다 보면 절박함이 느껴진다.

- <레미제라블>은 어떤 이야기인가.
전나영 : <레미제라블>은 용기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실제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이런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알면서도 눈감는 경우도 많다. 한국말로 <레미제라블>을 연기하다 보니 영어로 연기할 때 느끼지 못한 걸을 깨닫는다. 극 중 프랑스혁명 당시 바리케이드가 무너질 때 민중들이 부르는 넘버 <터닝>을 한국에서는 <흘러흘러>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흘러흘러 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연습 도중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 싸웠나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 꼬마애의‘빨리 깨워’라는 대사에, 엄마는 깨울 수 없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시리아 난민들이 생각났다. 바다에 누워 있어 빨리 깨우면 정말 일어날 것 같은 아이를 뉴스에서 봤는데 계속 생각나더라. <레미제라블>을 통해 우리가 깨울 수 있는 친구들을 위해 이야기를 하고, 희망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슬픈 세 시간이지만 그 누구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전나영 : 네 살 때 <서편제>를 본 뒤 감동을 받고 아리랑을 따라 하면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다. 어린 나영이가 <서편제>를 보고 무엇을 이해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부터 한국적인 한이 배어서 그간 한국 무대에 서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무대에서 그걸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다.

양준모 : 오페라 <리타>가 초연의 호응에 힘입어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출과 동시에 출연까지 했는데 올해는 연출만 맡기로 했다. 당장 <레미제라블>이 우선이다. 어릴 때는 자신이 중심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지금은 자기가 해야 할 선에서 해야 할 것이 먼저다. 주인공이라서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할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은 <레미제라블>에 더욱 집중할 때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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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10-23 1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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